獨 노동시장 기적을 이끈 '하르츠 개혁'

↑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실업률 추이 (단위: %, 년; 2012년, 2013년은 블룸버그 전망치)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은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18% 성장에 그쳤다. 이는 인근 국가인 영국(35%)과 네덜란드(34%)의 절반 수준이었다.

저성장으로 일자리 창출도 힘들었다. 독일의 실업률은 90년대에 증가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서독은 9%, 동독은 18%를 넘었다. 특히 1년 이상의 실업자들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장기실업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국가재정도 취약해졌다.


독일로선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진보성향의 정부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02년 고용노동청의 고용알선스캔들을 계기로 칼을 빼들었다. 독일정부는 기업인, 노조원, 상공인, 정치인,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하르츠 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까지 4차례에 걸쳐 하르츠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20여개 연구소에 의뢰해 개혁의 효과를 점검했다.

하르츠 개혁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의 재정위기 풍파 속에서도 독일이 안정적인 고용시장을 유지하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하르츠라는 말은 폴크스바겐(VW) 관리 이사 출신으로 위원장을 맡았던 페터 하르츠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르츠 법안은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능률 및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유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로 고용수요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고용알선서비스를 부분적으로 아웃소싱하는 등 공공고용서비스를 재조직하고, 실업자가 정부지원을 받으려면 구직을 위한 노력을 입증하도록 하는 등 실업자의 자기 책임을 강화하도록 했다. 또 파견근로, 해고보호, 계약직 관련 규제를 줄였다.


일례로, 근로자가 실업상태가 되면 전직장에서 받은 순소득의 67%를 고용기간 및 연령에 따라 최소 6개월에서 최장 32개월까지 실업급여를 지급받도록 했다. 이후에는 실업부조로 소득의 57%를 무기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을 통해 과거 실업자 지원 제도가 '실업급여 I'과 '실업급여 II'로 재편됐다. 즉, 개인의 재취업을 목적으로 근로 능력에 따라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일대 개편됐다.

예컨대 주당 15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 자에 한해 이전 고용기간에 따라 최장 12개월 동안 실업급여Ⅰ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후 실업급여Ⅱ를 지급받도록 했지만 과거 소득에 기초했던 종전의 실업부조와 달리 일괄 지급되도록 했다. 또 실업급여Ⅱ를 지급받으면 다른 사회부조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더불어 민간영역에선 노동조합과 사측은 자율적 합의를 정착시켜나갔다. 노조는 사측으로부터 해고를 최소화하고 생산기지를 동유럽이나 아시아로 옮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신에 사측에 임금을 줄이고 근로조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는 기업과 다른 생산 요소들 간의 직간접적인 연합을 강조하는 독일식 자본주의 조정시장경제에서 비롯됐다고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엘리자베스 야콥스 연구원은 지적했다.

독일 하노버 상공회의소 빌프리드 프레보 소장은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당시 상황에 대해 "독일의 경쟁력은 90년대에 주당 35시간 법정근무시간 때문에 급락했다"며 "하지만 노사간 자율협약을 통해 기업들은 주당 40시간으로 복귀했고 근무시간을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노사는 또 협약을 통해 잡쉐어링(일자리공유)실시해 실업을 줄이고 기업은 채산성을 맞췄다. 이 같은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에는 이미 오랜 기간 불황기에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고용을 유지하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단축근로제(공공)와 초과근무시 시간계좌에 시간을 적립해 향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노동시간계좌제(민간)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노동연구소(IZA)의 레나 야코비와 요헨 클루페 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공공 고용 서비스의 재조직은 일부 서비스를 아웃소싱한 점을 제외하곤 성공적이었다. 실업급여 방식은 긍정적 효과를 미쳤고 변경된 취업 프로그램의 효과는 개선됐다"며 "(하르츠 개혁은) 독일 노동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